증오와 갈등의 폭발 시대
저주 인형도 온라인 판매
어찌해야 사랑이 넘칠까
저주 인형도 온라인 판매
어찌해야 사랑이 넘칠까

'저주 인형'이 온라인에서 잘 팔리고 있단다. 기발하다기에 앞서 놀랍다. 남을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행을 겪도록 빈다는 것이 저주 아닌가.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을까. 증오하다 못해 저주까지 퍼붓는 세상. 그런 심리에 편승해 물건을 파는 세태.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질투해 저주하는 드라마를 흉내 냈다. 저주하는 사람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거나 때리고 발로 밟기도 한다고 한다. 배신한 전 연인이나 배우자, 직장 상사 등도 대상이 된단다.
전 사회적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 차원을 넘어선, 어떤 불편도 힘듦도 견디지 못하는 작금의 사회다. 실연을 해도 소주 한두 병과 몇 개비 담배로 잊고 삭이던 때가 있었다. 부부 사이도 어떻게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참을 인(忍)자를 마음에 새기면서 애증의 세월을 보냈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었다. 직장 상사의 호된 질책도 기꺼이 받아넘겼다.
지금은 어떤가. 헤어진 연인을 흉기로 죽이는 보복살인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백년해로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친구와 의절하는 것보다 더 쉽게 이혼 도장을 찍는다. 상사의 온당한 가르침이나 지시라도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법적인 문제로 비화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그런 현상이 일반화됐으며, 부모 자식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과 배려, 관용, 용서, 화해, 양보 따위의 좋은 단어들은 점차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 대신 증오와 공격, 폭력, 대결에 이어서 저주까지 온갖 악(惡)의 관념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인사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층간소음으로 다투는 일만 들려온다.
우리가 없고 나만 있는 사회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의 폭발이다. 이것은 사회가 아니다. 인간이 모여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다. 때로는 손해도 볼 수 있다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다. 이래서는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최악으로 증오가 끓어넘치는 대한민국이다. 상대를 잡아먹어야 분이 풀리겠다는 악다구니가 하도 층층겹겹이어서 말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다. 좌파는 우파를 못 잡아먹어 난리고 우파 역시 좌파를 세상 밖으로 몰아내고 말겠다고 있는 악, 없는 악을 다 쓴다.
분노조절장애를 부추기는 앞잡이가 정치라고 본다. 유일한 목표가 권력 획득인 정치다. 유사 이래로 살육과 유혈을 부르며 전쟁까지 일으킨 원흉도 정치다. 버젓이 이웃 나라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은 러시아의 전제 무력정치를 21세기에 보고 있다. 자칫 우리도 그런 일이 벌어질 판이다. 내전이 공공연히 언급되지만 극도의 사회적 갈등의 결말은 내전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협량하고 옹졸한 정치인들이 문제다. 인륜과 도덕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으면서 알량한 지식에 교활성만 갖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든 이들. 그들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 독재 시대의 정치가들도 이러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법률가 또는 운동권 출신인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정치가 망조에 든 이유도 된다. 타협은 모르고 상대를 비정하게 꺾어야만 하는 직업정신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사람들이다.
극한의 갈등을 조절할 수단과 인물의 부재도 더 암울한 앞날을 예고한다. 개인이야 정신과 약으로 치료해 볼 수 있겠지만, 이 거대한 사회적 분노조절장애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존경받는 원로도, 참스승도, 덕망 깊은 종교인도 모두 갈등의 파도에 휩쓸려 버렸을까.
단기간에 세상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비관적 심정이 앞선다. 점점 메말라 가는 이 땅을 어떻게 사랑이 넘치는 강토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물론 개인 개인이 변해야 한다. 그러면서 100년을 내다보며 준비도 해야 한다. 정치제도를 바꾸든 교육체계를 바꾸든. 그도 안 된다면 백마를 타고 올 어떤 현자(賢者)의 출현이라도 기다려보는 도리뿐일까.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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