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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삼성의 진짜 위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08 18:14

수정 2022.06.08 18:14

[테헤란로] 삼성의 진짜 위기
올해 초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의 신년사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없었다.

역대 최대 실적을 내리 쓰는 와중에도 습관처럼 붙이던 '위기'가 올해는 빠졌다. 2명의 최고경영자(CEO)는 그 대신 '기술혁신'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한 해가 절반쯤 지난 현시점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에서 그 누구도 위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득 삼성답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짜 위기'를 알아챈 임원들이 겁을 먹고 입조심을 하는 것일까. 삼성을 7년째 출입한 기자의 눈에는 지금의 삼성이 '진짜 위기'로 보인다.

위기의 발원지는 '리더십의 부재'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부터 지금까지 5년째 재판 중이다. 당시 윤부근 전 부회장이 '삼성은 선단장 없는 배'라며 선처를 호소했던 그대로 여전히 표류 중이다. 이제 겨우 1심이 진행 중인 현 재판의 대법원 판결까지 최소 3~4년은 더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래도 일각에서 '관리의 삼성' 아니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총수가 자리를 비운 5년의 시간 동안 삼성의 나사도 하나둘 느슨해졌다.

갤럭시 게임옵티마이징서비스(GOS) 논란, 반도체 수율 논란 등 최근에만 일선 사업에서 실망스러운 사건들이 여러 개가 터졌다.

밖으로 드러난 이런 일들이 극히 일부일 것이란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 보인다. 제대로 의사결정을 못하는 구조가 5년이나 계속됐다. 경영진이 단기성과가 확실한 원가절감과 질보다 양이란 단맛에 취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글로벌 브랜드이미지 타격은 이미 시작됐다. '6만 전자'라는 주가가 이 기업의 미래를 가장 객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삼성맨'들의 로열티도 예전만 못하다. 주축이 된 MZ세대들은 일찍부터 주는 만큼만 일하는 초개인화된 구성원이다. 상사들과 달리 오너에 대한 충성심도 약하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30년간 임무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앞으로 30년을 이끌어야 한다.

이 거대한 기업을 손볼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 족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나 더 큰 걸 잃을 수 있을지에는 관심이 없다.

두 번이나 사면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계 큰형님 역할을 하더니 현대차마저 제치고 재계 순위 2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갱생한 재벌의 선한 영향력이라 할 만하다.

이 부회장도 다시 삼성의 운전대를 잡고 '위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km@fnnews.com 김경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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