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로 막대한 국가예산이 위로금, 지원금, 장려금 명목으로 국민에게 지급됐다. 최근에는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을 맞은 계층에 지원금이 투입됐다.
우선 퍼주기 논란 같은 얘기는 뒤로하자. 하루아침에 몇 배씩 뛰어 오른 난방비를 "어차피 네가 썼으니까 내라"며 손을 놓고 있는다면 그건 책임 있는 정부라고 보기 어렵다. 못 내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사회안전망이 감싸야 하고, 부담이 크다면 천천히라도 낼 수 있게 방안을 마련해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날이 따듯해지니 난방비 걱정은 덜어지는데, 문제는 여름이다. 너무 더운데 냉방을 못 해 발생하는 사망사고도 적지 않아서다.
2018년에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가 내놓은 논문을 보면 저소득층일수록 폭염으로 인한 사망위험률이 18%나 높다고 나와 있다.
냉방은 무조건 전기를 써야 하는데,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는 전기요금이 벌써부터 무섭다.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서 되파는 한국전력의 적자가 작년에 32조원을 넘었다. 요금은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갑자기 국민에게 올여름 냉방비 폭탄이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해서다.
전기요금을 한 번에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전력도매가(SMP) 상한제다. 한국전력이 전기를 사들이는 가격에 상한을 두는 것인데, 그나마 적자 증가 속도를 늦춰 요금인상을 최소화하려는 고육책이다.
이 제도가 3월 한 달간 휴식기를 가지다가 이제 4월에 다시 시작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발전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SMP 때문에 전기를 '더 비싸게' 팔지 못해서 손해가 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석 달간 SMP 덕분에 한전이 매달 6000억~7000억원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용을 줄인 만큼 적자 증가 속도는 늦춰지고,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 폭을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지난해 한전이 역대급 적자를 내는 동안 SK나 GS, 포스코 같은 대기업 계열의 민간발전사들이 작년 3·4분기까지 벌어들인 돈이 2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 많이 벌었다고 나무라는 것 아니고, 민간기업 이익을 뺏어 적자를 메우자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한전이 적자를 해소하려면 가구당 전기요금 월 8만원 이상은 올려야 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이렇게 올린다면 올여름 우리 머리 위로는 냉방비 폭탄이 마구잡이로 떨어질 것이다.
이제 정부의 선택이 남았다. 민간기업의 이익 보호와 소비자 피해구제. 정부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 문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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