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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관, 빚 280억 끝까지 책임지려…차 안 쪽잠에 하루 5개 행사"

뉴시스

입력 2025.02.11 00:01

수정 2025.02.11 08:58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트로트가수 송대관(79)은 '해뜰날'(1975)로 상징되는 자수성가형 가수의 대표격이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고인의 어린 시절은 무척 살림살이가 팍팍했다. 가수 성공을 목표로 상경할 당시에도 표 살 돈이 없어 무임승차를 할 정도였다. 1992년 발표한 '차표 한 장'이 크게 히트한 이후 서울역에 차비를 몇 배로 돌려준 사연은 유명하다.

특히 송대관을 스타덤에 올린 '해뜰날'은 빈자(貧者)들의 희망가로 통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이 노래는 위로이자, 앞날을 꿈꾸게 하는 빛나는 등불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제 개발시대에 주제가처럼 불리며 '시대의 응원가'가 됐다.

하지만 송대관의 '네박자'를 빌리자면, 인생은 항상 정박자가 아니다.

송대관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해뜰날'로 가수왕까지 됐지만 결혼 이후 그의 삶은 해가 지기 시작했다. 컬러 TV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수입원인 공연 시장이 이전까지 않자 송대관은 잠실 등지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1980년대엔 미국에서 살았다. 전두환 정권 시대인 지라, 혹자는 고인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랴고 추정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던 송대관은 샌드위치 가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러다 향수병이 도져 귀국해 '차 표 한장' '유행가' 등의 히트곡을 내며 트로트 4대 천왕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10년대엔 또 그의 삶에서 해가 졌다. 2013년 아내가 부동산 투자 등을 실패했다. 거기에 오해가 쌓이며 사기 혐의에 휩싸였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500억원대 재산이 은행 등에 넘어갔고 280억원 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송대관은 그러나 아내를 원망하기는커녕 다독이며 묵묵히 빚을 갚았다. 젊은 시절의 성공은 아내 덕이라며 아내를 더욱 보살폈다.

9일 발인식이 엄수된 이후에도 그런 고인의 근면과 다정함에 대한 후일담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송대관, 현철, 태진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린 설운도는 고인에 대해 "무엇보다 열심히 사셨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송대관은 칠순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행사장 등을 누비며 빚을 변제했다. 하루에 다섯 개의 행사를 소화하기 위해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차 안에서 쪽잠을 청했다.

가요계 관계자는 "빚을 갚아가는 가운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던 분"이라고 증언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한 송대관은 가수들의 권익과 위상 정립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가수 남진에 이어 2008년 대한가수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송대관은 컨디션 난조로 최근 병원을 찾았다가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지난 7일 별세했다. 빈소엔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가수들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조문을 왔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을 비롯 나훈아, 조용필, 임영웅 등의 스타 가수들과 방송인 김구라 등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고인은 눈을 김기 직전까지 행사는 물론 방송 출연도 활발히 해왔다. 생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KBS 1TV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방송된다. 오는 16일 충남 당진시 편, 오는 3월2일 서울 영등포구 편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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