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블루라이트의 두 얼굴: 낮에는 친구, 밤에는 수면의 적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22 07:00

수정 2025.03.22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블루라이트의 두 얼굴: 낮에는 친구, 밤에는 수면의 적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아침과 낮에 쬐는 햇빛은 시간 정보를 전달하여 밤에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그렇다면 밤에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조명은 멜라토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잠들기 전에 실내 조명에 오랜 시간 노출되는 것은 멜라토닌 분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2011년 미국 하버드 의대와 영국 서레이 의대의 연구진은 18~30세 성인 11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잠들기 8시간 전부터 3룩스 이하의 어두운 빛 아래 생활하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200룩스 이상의 실내 조명 아래 생활하게 했다.

5일 동안의 실험이 끝난 후 두 그룹 사이의 멜라토닌 분비를 비교하자 실내 조명 아래 생활한 그룹의 99%가 멜라토닌 분비 상승 시각이 지연되었고 분비되는 시간도 90분이나 짧았다. 또한 멜라토닌 분비량도 크게는 50%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명의 파장도 멜라토닌 분비에 영향을 끼친다.

2003년 발표된 논문을 보면 6.5시간 동안 460나노미터 파장(청색)에 노출되는 것이 555나노미터 파장(녹색)에 노출되는 것보다 멜라토닌 분비 상승 시각이 2배 가까이 느리고 분비량 감소도 2배 이상 많았다.

2005년 스위스 연구팀의 조사에서는 늦은 밤 460나노미터 파장에 2시간 노출되는 것이 550나노미터 파장에 노출되는 것보다 멜라토닌 분비를 더 많이 감소시켰다. 파장이 짧을수록 빛이 갖는 에너지가 높아서 뇌를 각성시키는 효과도 높아진다고 풀이할 수 있다.

파장이 짧은 빛은 바로 청색광, 블루라이트를 말한다. 블루라이트는 태양의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 중에서 파장이 가장 짧은 빛이다. 자외선과 가장 가까운 파장의 빛이라서 밤에 블루라이트를 많이 받으면 뇌가 낮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LED 조명에는 약 10~30%의 블루라이트가 포함되어 있다. 조명의 밝기가 클수록, 색온도가 높을수록, 블루라이트의 양은 더 많다. 예를 들어, 3,200KKalvin(색온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파장이 짧을수록 색온도가 높고 흰색에 가깝다)의 LED 조명에는 블루라이트의 양이 10% 정도이지만 6,500K의 LED 조명에는 블루라이트의 양이 27%이다.

늦은 밤까지 조명을 켜 놓고 생활하는 도시인, 특히 밝고 하얀 조명 아래 독서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멜라토닌 분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8년 일본 연구팀은 LED 조명이 멜라토닌 분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22명의 어린이와 20명의 성인이 참여한 이 연구에서 3,000K와 6,200K LED 조명에 노출된 어린이는 같은 조명에 노출된 성인보다 멜라토닌 분비량의 감소 폭이 훨씬 많았다. 성인은 3,000K와 6,200K 모두에서 분비량이 30% 정도 감소했지만, 어린이는 3,000K에서는 58%, 6,200K에서는 81%가 감소했다.

블루라이트의 두 얼굴: 낮에는 친구, 밤에는 수면의 적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어린이의 경우 블루라이트에 의해 멜라토닌 분비가 더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되도록 저녁에 색온도가 낮은 조명을 사용하고 일찍 잠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연구는 시사한다.

2011년 미국 토머스제퍼슨 대학 신경학 연구팀은 8명의 건강한 20대 성인의 눈에 잠자는 동안 블루라이트를 조사하고 멜라토닌 분비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았다. 새벽 2~3시반 사이에 안구에 블루라이트를 쏘고 전후 멜라토닌 분비량을 비교하자,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잠들기 전뿐만 아니라 잠자는 동안에도 안구가 블루라이트를 인식하며 이로 인해 멜라토닌 분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완전히 불을 끄고 커튼을 닫아 외부 조명까지 차단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빛으로 모든 색을 구현하는 RGB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블루라이트가 많이 나온다. 특히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의 양은 단연 으뜸이다.

사이즈가 적은 만큼 매우 밝고 색온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다른 기기보다 더 가까이 놓고 본다는 점, 어둠 속에서 보는 일이 많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는 블루라이트의 양을 늘린다. 2021년 오스트리아 연구팀은 14명의 20대 성인 남성들을 잠자기 전 각기 다른 빛에 노출시키고 수면의 질과 멜라토닌 분비량을 비교했다.

잠들기 전 90분 동안 블루라이트 저감 필터가 없는 스마트폰을 보게 한 날과 블루라이트 저감 필터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보게 한 날, 그리고 램프 아래 책을 읽게 한 날을 비교했을 때, 필터 없이 스마트폰을 본 날이 수면 지속시간이 가장 짧았고, 깊은 수면을 하는 비램수면 시간도 가장 짧았다.

2018년 하버드의대와 브리검 여성병원 수면건강연구소는 LED 태블릿 사용이 수면에 끼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연구했다. 9명의 20대 성인에게 잠자기 전 종이책 혹은 태블릿을 마음껏 보게 하고 원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하자 종이책을 마음껏 읽은 날보다 태블릿을 본 날이 평균 30분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또 종이책을 본 날은 멜라토닌이 평균 9.75% 감소했으나 태블릿을 본 날은 54.17% 감소했다. 멜라토닌 분비가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각도 종이책을 본 날은 저녁 7시35분이었으나 태블릿을 본 날은 8시23분으로 늦어졌다.
설문조사에서 참가자들은 태블릿을 사용한 날은 종이책을 읽은 날보다 밤 늦게까지 졸리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몇 시간 동안 잠이 덜 깬 상태가 지속됐다고 한다. 이처럼 잠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단 하루 이틀만으로도 멜라토닌 분비를 크게 억제한다. 한밤중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이라면 그 영향은 더 클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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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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