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것을 제외하곤 재발 방지대책 마련은 아직 전무하다. 여전히 논의 혹은 추진 중일 뿐이다. 그사이 경북 영주에선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도 너희를 해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면서 난리가 났다. 탄핵정국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심신미약자의 개인 일탈로 치부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금세 무관심해지지 않았는지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짚어봐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범죄는 단호한 법적 대응과 함께 사회구조적 개선에 대한 공감대 마련이 병행되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우울증 환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우울증 등 심신미약이 죄를 감경받는 명분 또한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이유로 형량을 줄이는 사례가 많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심신미약 감경 사례는 전체 형사사건의 8.3%에 달했다. 살인·강간·강도 등 강력범죄에선 12.5%까지 올라간다. 자칫 형사책임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2017년 인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에서 피고인 김모양은 심신미약을 주장했고, 법원은 일부 인정했다. 결국 1심 무기징역은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으로 내려갔다.
해외에서는 더 엄격하다. 미국과 영국은 심신미약을 인정하더라도 범죄행위와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돼야 감형이 고려된다. 이마저도 실행 사례는 드물다. 프랑스와 독일은 심신미약을 오히려 가중처벌 요인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예방과 사회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우리도 이런 흐름에 따르는 것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심신상실 상태의 범죄행위를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형법 제10조에서 살인, 성범죄 등을 제한·배제하는 방향으로 조항을 손볼 필요가 있다. 감경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보호하면서도, 강력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방지하는 균형 처방이다.
역사적으로도 강력한 법 집행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대명률'을 기반으로 어린이와 노약자 대상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형법체계를 정립했다. 유럽에서도 중세 이후 아동보호법이 점차 강화됐으며, 이는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방은 외면해 놓고 범죄 발생 후에야 부랴부랴 대응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심신미약자를 조기 발견해 경찰과 정신건강 전문가, 사회복지사가 함께 심리·사회적 지원을 하는 미국의 '위기개입프로그램(CIP)'은 공부해 볼 만한 방안이다. 미 법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CIP 도입으로 정신질환 범죄자 재범률은 평균 30%, 경찰과 정신질환자의 물리적 충돌은 40% 감소했다. 우리도 '위기청소년 보호제도'와 '소년범 선도 프로그램'이 있긴 하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보호 대상 청소년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상담과 지원 시스템은 부족해서다. 일본 '특정범죄자 신상공개법'과 같이 강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을 법이 규정하고, 경찰이 직접 관리하는 체계 역시 고민해 봐야 한다. 상대적으로 '솜방망이' 대처라는 지적을 받는 우리 신상공개제도와는 차이가 난다.
정신 차려야 하는 분야로 정치권은 필수다. 권력을 향해 계산기를 두드리더라도 강력범죄 대응만큼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가해자 정신상태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개선책을 먼저 마련하는 것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 서민이 뽑아준 정치인의 도리다. 만약 이 상태로 저항력이 약한 이들을 노린 범죄가 지속된다면 우리 정치와 법, 제도가 용인한 것과 사실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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