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청동·면포·생수·건전지...‘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이어졌다면 금니도
화폐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신용’
물물교환에서 화폐경제로…전쟁·재난 상황에서 은행빚이 무슨 소용
신용과 치안이 무너진 사회에서 명목화폐는 쓸모없어
가상 자산 비트코인이 금·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화폐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신용’
물물교환에서 화폐경제로…전쟁·재난 상황에서 은행빚이 무슨 소용
신용과 치안이 무너진 사회에서 명목화폐는 쓸모없어
가상 자산 비트코인이 금·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텅텅 빈 내 통장 ‘투자 수익’으로 채우고 싶은데, 낯선 경제용어들이 어렵습니다. 명목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체했듯 이제 곧 ‘가상화폐 시대’가 열린다는데 사실일까요? 영화로 알아보는 ‘세상 쉬운 경제용어 풀이’ 함께 합시다. 텅장탈출을 위한 ‘경제뉴스의 행간 읽기’ 지금 시작합니다.
[파이낸셜뉴스] “은행이 다 망했는데 대출이 뭔 상관이에요.…(중략)…그냥 리셋이라고 리셋”
-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 중 금애의 말(김선영 분)
지진이 일어나고 서울이 무너졌습니다. 폐허 속에 황궁아파트만이 우뚝 서있습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베란다 너머의 황폐화된 모습을 바라보다 아파트 로비로 내려갑니다. ‘재난상황메뉴얼’을 펼쳐든 관리소장 주위로 인파가 몰립니다. 누구도 대책이 없는데 분명한 건 망했다는 것.
로비 한쪽에서 여행용 캐리어가방을 펼쳐놓고 황도 캔조림과 식료품을 파는 장사꾼이 ‘현금X, 라이터·기름·생수 받음’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습니다.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쓰레기가 되는 게 ‘지폐’입니다. 중앙은행도 정부도 명목화폐의 ‘신용’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이쪼가리’ 이상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죠.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국아파트는 물물교환 경제로 돌아갔습니다.
한 사내가 “건전지도 받냐”고 묻습니다. 장사꾼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건전지가 일종의 실물화폐로 기능한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민성은 5만원권은 '꾸깃' 움켜쥐고 시계를 풉니다. “시계는 받아요?” 장사꾼은 황도를 내어줬습니다. ‘명목화폐’인 지폐로 물건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사용가치가 담긴 시계는 실물화폐로 작동한 것입니다.
실물화폐의 조건 '사용가치와 간편성, 보편성'
영화 속에서 생수, 시계, 건전지처럼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화폐를 실물 화폐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금화나 은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사극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선비들의 봇짐에 둘둘 말려있는 ‘면포’도 조선 후기 애용된 실물화폐입니다. 선비들은 과거시험 보러가는 길에 들린 주막에서 숙박비와 밥값을 면포를 잘라 치뤘습니다.
이처럼 실물화폐에는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다양한 생산물과 재화가 쓰였습니다. 금은보화는 물론, 곡물, 가축 등을 사용한 사회도 있습니다. 고대에는 돌과 조개 등을 이용했는데 이를 자연 화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후 각종 금속을 제련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대 중국에서는 조개 모양으로 만든 청동을 화폐로 쓰기도 했습니다.
실물 화폐의 특징은 소재가 품질면에서 유사하거나 동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분해·결합·휴대가 쉬워야 한다는 점, 부피는 작을수록 내구성은 강할수록 많은 사회에서 쓰였습니다. ‘콘유’에서 한 남성이 아파트 밖 시체의 ‘금니’을 뽑는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그는 금이 다시 화폐로 쓰일 것으로 예상하고 위험한 폐허 속을 헤맸나 봅니다. 실제 최근까지도 다이아몬드, 루비 등 귀금속은 일종의 실물 화폐로 쓰이고 있습니다.
실물 화폐의 또 다른 특징은 그 가치가 사용자의 유용성에 따라 직접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생수라는 실물화폐를 주고, 황도라는 재화를 구매하는 방식은 물물교환과 다를게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동체(사회)가 생수를 일종의 교환 단위로 생각했다면 이는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닙니다.
산업혁명이 앞당긴 '명목화폐 시대'
실물화폐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규모가 커졌을 때 발생합니다. 아무리 가볍고 작아도 필요한 양만큼 보관·운반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교환가치는 다르지만, 거래에 필요한 무언가를 화폐로 써야 하기 때문에 명목화폐가 생겼습니다. 현대에 우리가 쓰고 있는 5만원권, 1만원, 500원짜리 동전 등이 바로 명목화폐입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찍어내는 화폐는 물론, 백화점이나 프랜차이즈 기업이 찍어내는 상품권도 명목화폐의 일종입니다. 그자체로 가치는 없지만, 법률과 관습이 사회적 신임으로 이어져 화폐로 쓸 수 있게 진보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돈(지폐)를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1 9세기말 대영제국은 파운드화를 언제나 금으로 바꿔주는 국제적 금본위제를 실시했습니다.
언제든 파운드화를 가져오면 그에 맞는 금을 내어주겠다는 일종의 종이 증표를 파운드화로 쓰기 쓴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귀금속 즉 실물화폐만을 돈으로 생각하고, 지폐는 귀금속을 찾아올 수 있는 경우에만 돈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미국 정부가 세계 질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갖게되자, 미국의 대통령 닉슨은 금본위제 포기 즉 ‘불태환’을 선언합니다. 달러를 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한 불태환선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이로 인해 현재의 통화제도가 완성된 것은 사실입니다.
가상화폐가 달러를 대체하려면...안정성과 속도
비트코인, 이더리움같은 가상자산들이 새로운 화폐의 지위를 획득할 것이라는 주장은 이같은 화폐의 발달 과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비트, 이더 등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금본위제의 금이 하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처럼 비트코인이 화폐를 대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가상화폐가 ‘가치 저장’이라는 화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버냉키는 “만약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를 대체한다면 시민들이 식료품을 살 때 비트코인을 쓸 수 있다”며 “비싸고 불편해서 비트코인으로 식료품을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금에는 기본적인 사용 가치가 있다”며 “충치를 채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데 비트코인의 기본 사용 가치는 랜섬웨어나 이와 유사한 것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 가상화폐가 화폐로서 기능하려면 3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먼저 요동치는 가격 즉 변동성입니다. 어제 2000만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이 오늘 3200만원에 거래된다면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경제활동에 코인을 활용하는 사람이 아닌 기대수익을 바라고 돈을 묶어두는 사람을 걸러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속도입니다. 코인을 주고받은 뒤 이를 원장에 기록하는 데 시간이 몇분씩 걸리는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실제 소비, 소매상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제 시간을 줄이는 것은 장사꾼과 소비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점심시간 회사 앞 편의점에서 계산을 위해 긴줄이 늘어선 것을 본 일이 있나요? 이들의 결제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게 되면 매출과 수익은 자동으로 늘어납니다.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 지지자들은 블록체인에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레이어드해 속도를 개선했다고 말합니다. 가상화폐가 '찐 돈'으로 쓰이게 될 날이 찾아올까요?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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