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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낙제점 ESG 인식으로 EU시장 뚫을 수 있겠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6 18:26

수정 2024.03.26 18:26

100점 만점에 34~42점에 불과
CBAM 대비 시간 2년밖에 없어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사진=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사진=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대응 마인드가 갈수록 느슨해지는 조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6일 발표한 ESG 규제대응 현황 조사결과에서 국내 기업들의 인식과 대응 수준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이 시행하는 주요 ESG 수출 규제에 대한 인식 수준은 100점 만점에 42점에 불과했다. 대응 수준도 34점에 그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도 크다.
규제에 대한 인식 수준의 경우 대기업이 55점인 반면, 중소기업은 40점이다. 대응 수준도 대기업 43점, 중소기업 31점이다.

글로벌 ESG 규제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국내 기업의 인식이 이토록 낮다니 걱정스럽다. 한때 ESG 경영 열풍이 휘몰아치기도 했지만, 벌써 잊은 듯하다. ESG 마인드가 해이해진 데는 고금리와 경제불황이 작용한 감이 있다.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ESG를 준비하려면 추가 투자와 비용 부담이 생긴다. 매우 화급한 문제가 아니다 보니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이 ESG 규제를 우선순위에서 밀쳐 놓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ESG 규제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과도한 ESG 확산이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들의 경영을 압박해왔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연기금의 ESG 투자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ESG에 대한 반발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에서 약 133억달러(약 18조원)의 투자금이 회수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ESG 반대 운동이 앞으로 주류로 부상할 것이란 생각은 오판일 수 있다. 블랙록이 운용 중인 자산은 10조달러(약 1경3400조원)에 이른다. 2년간 빠져나간 돈은 총 운용자금의 0.133%에 불과하다.

설령 미국 내 ESG 규제가 느슨해졌다 해도 EU 상황은 다르다. 곧 닥쳐올 ESG 규제 기준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오는 2026년 본격 시행된다. 생산 공정별 온실가스 배출 산정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춰 현장 공정을 전면 점검해야 한다. 기업들이 준비할 시간이 2년밖에 안 남았다.

신배터리법에 대응하려면 제품 생애주기 전반을 따져보고 종합적인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며 관리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배터리 관련 자원순환 체계를 만들 수 있다. 공급망 실사법은 우리 기업들이 취약한 환경과 인권 문제를 망라하고 있다. 공급망 밸류체인에 포함되는 모든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ESG 기준에 부합하는지 증명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ESG를 본질적 취지와 별개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게 아니라도 ESG는 글로벌 대세이자 피할 수 없는 규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경쟁사를 제치고 시장을 확대할 기회로 삼는 적극적 자세도 요구된다.
정부는 정보 제공과 세제 혜택 등으로 ESG에 대비하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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