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유전개발 수익은 내 몫, 손실은 남 탓?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4 10:00

수정 2020.07.04 09:59

/사진=fnDB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분야다. 성공할 경우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지만, 실패할 확률도 비례해 크다. 예멘4광구 개발사업도 그랬다.

2005년 9월 예멘 정부로부터 4광구 개발 사업권 50%를 획득한 한국석유공사는2006년7월 일부 지분을 국내 석유개발 회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입찰을 거쳐 광구 지분에 대한 평가 금액과 유전개발 사업 참여기회를 준데 대한 프리미엄(보상금)을 포함해 현대중공업에게는 약350억원을 받고 개발 지분 15%(한국석유공사 지분 기준으로는30%)를, 한화에는 약 115억원을 받고 개발 지분 5%(한국석유공사 지분 기준으로는10%)를 넘겼다.


그러나 계약체결 당시 기대와는 달리 개발 비용의 급격한 상승, 예멘 현지 사정 악화, 유가 급락으로 인한 경제성 변화 등 여러 악재가 잇따르면서 유전개발 사업은 좌초 위기로 내몰렸다.

결국 석유공사는 석유 광구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 현대중공업 및 한화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예멘정부에는 운영권을 반납하며 유전사업에서 철수했다. 현대중공업과 한화는 "석유공사가 최저생산량을 보장했으나, 결과적으로 그 만큼의 생산을 하지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분매입대금과 보상금을, 한화는 보상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했다.

■대법 “책임주체 석유공사 아니다”
1심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한화가 웃었다. 재판부는 "계약의 객관적 기초가 된 광구의 경제성에 대해 당사자 모두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한 만큼 현대중공업에게 프리미엄의 손실까지 감수하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석유공사가 현대중공업에 프리미엄조로 받은 돈을 돌려주라고 판단했다. 한화도 1심에서 같은 판단을 받았다.

1심 판단을 납득하지 못한 석유공사는 항소를 결정하고 대리인을 교체하기로 했다. 1심을 맡았던 국내 모 대형로펌 대신 법무법인 바른을 선임한 것.

바른은 1심 판단 분석을 토대로 사실관계와 법리를 재구성해 본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최고 자원개발 전문가를 증인으로 신청해 석유자원개발의 특수성과 불확실성, 광구 지분 매매와 관련한 국제거래 관행 등을 통해 반박논리 근거를 명확히 했다. 또 해외 파견 중이던 피고 회사 당시 담당자를 국내로 소환, 계약의 시작부터 재정리함으로써 원고 주장의 모순을 조목조목 찾아내 반박할 수 있었다. 배수진을 치고 응전에 나선 끝에 “석유공사가 현대중공업에 프리미엄을 돌려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이끌어 냈다.

2심 재판부는 △석유개발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인 점 △개발초기부터 매장량 및 경제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후 개발과정에서 얻는 추가 데이터를 통해 매장량 및 경제성이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 △석유공사는 계약 당시까지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현대중공업에게 충분히 제공한 점 △현대중공업 역시 독자적으로 수익성을 분석한 후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한 점 등에 주목해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와 달리 한화 사건에서는 ‘쌍방 동기의 착오가 있었다’는 이유로 한국석유공사가 한화에게 프리미엄을 반환해야 한다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1심과 2심의 결론이 엇갈린 가운데 양측은 약 3년 2개월 가량의 치열한 대법원 공방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석유공사가 웃었다. 이같은 결론에 따라 2심까지 패소상태였던 한화 사건 또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됨으로써 석유공사에 책임이 없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자원개발 불확실한 특성 따라 ‘책임 추궁 불가’ 선례 남겨
석유광구개발 사업은 수많은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변수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주도한 컨소시엄에 책임 추궁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는 석유개발사업의 불확실성을 도외시해 계약 유지 및 자기책임 원칙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법원은 "사건과 관련해 석유공사는 계약 당시까지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에 모든 자료를 충실히 제공했고, 기업들은 수익성을 독자적으로 분석해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광구의 수익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판단했을 것"이라고 봤다.

법조계는 이번 사건은 자원개발의 고위험·고수익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해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전가를 막은 사건으로 평가했다.
만약 하급심 판결대로 최종판단이 이뤄졌다면 석유개발사업을 포함한 자원개발 사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무조건 높은 금액을 제시해 낙찰 받은 후 사업이 실패하면 매도자를 상대로 취소권을 행사해 개발에 관한 위험부담을 모두 매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특히 하급심의 결론이 굳어질 경우 우리나라는 ‘국제적 호구’로 전락해 심각한 국부유출 위험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2심부터 대법원까지 사건을 수행한 김도형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이 사건은 용어부터 너무 전문적인데다 석유개발사업 절차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사건이라 소송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애를 먹었던 평생 기억에 남을 사건”이라며 “뒤늦게나마 자원개발 사업 특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처음 만들어진 만큼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산업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및 자원개발이 위축되지 않고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