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태워진 소멸, 새 시작입니다"..청도를 환하게 밝힌 이배 '달집 태우기'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3 14:27

수정 2025.02.13 14:27

정월 대보름인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의 청도천에서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가 진행되는 모습. 조현화랑 제공
정월 대보름인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의 청도천에서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가 진행되는 모습. 조현화랑 제공

【청도(경북)=유선준 기자】 "작품의 기본적 개념은 '순환'입니다. 베니스 전시의 작품을 태우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없애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인 지난 12일 오후 5시, 경상북도 청도의 청도천.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자 화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청도천의 9917㎡ 규모 작은 섬 곳곳에 화염이 오르고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술품 컬렉터 100여명의 환호성이 터진 가운데, 화재에 대비한 구급대원과 경찰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배 작가의 개인전 '달집태우기(La Maison de la Lune Brulee)'의 피날레가 이날 이 작가의 고향인 청도에서 화려하게 개최됐다.



그는 지난해 제60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연계 부대 전시로 '달집태우기'를 선보였다. 앞서 지난해 2월 청도에서 달집태우기를 시작해 베니스로 향한 후 다시 청도로 돌아와 이날 순환의 여정을 완성했다.

달집태우기는 청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모여 행하는 전통 의례다. 보름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히는 놀이로,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염원을 담은 행사다.

이날은 짚으로 만든 달집 대신, 청도천의 작은 섬 전체에 흰 종이가 덮어씌워졌다. 그 아래에는 이 작가가 베니스 전시 때 사용하고 가져온 붓질한 종이, 소원을 담아 적은 한지, 베니스 전시장 벽을 장식했던 도배지 등이 채워졌다.

정월 대보름인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의 청도천에서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유선준 기자
정월 대보름인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의 청도천에서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유선준 기자

조현화랑 주관으로 펼쳐진 이번 달집태우기는 사람의 문화와 자연의 화합, 비움의 순환, 자연의 호흡과 리듬 등을 의미했다. 이날 참관인들도 염원을 적은 종이를 전달해 퍼포먼스가 의미를 더했다.

이 작가는 행사 직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청도천에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이는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순환과 흐름을 나타내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 제목을 '달집태우기'로 정한 데 대해 "한국의 민속 의식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내 나름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며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뜨거운 시대에 한국 작가로서 우리의 전통이나 역사, 문화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태우기' 행위와 '소멸과 생성을 통한 순환'이라는 의미에 대한 글로벌 공감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작가는 "서구권에는 가톨릭의 '생장' 의식이 있는데, 나쁜 것을 태우고 새로운 것을 맞는다는 의미로 달집태우기와 비슷하다"며 "베니스 전시 당시 참관인 중 퍼포먼스를 보고 감동을 받아 우는 사람도 많았는데, 특히 비엔나(빈)에서 차로 24시간을 달려 일부러 달집태우기를 보러 온 한 참관객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 청도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배 작가가 달집태우기 행사 직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유선준 기자
지난 12일 경상북도 청도 청도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배 작가가 달집태우기 행사 직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유선준 기자

이 작가는 "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순환'"이라며 "지난해 달집을 태우고 그 영상과 타고 남은 숯으로 베니스에서 전시한 뒤 다시 청도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순환'으로 이번에 달집을 태운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퍼포먼스 장소로 청도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청도는 내 고향이며 작품의 어머니 같은 곳"이라며 "봄에 냉이를 캐어 먹던 순수한 마음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오늘날 환경, 전쟁, 인간성 상실 등 두려움을 일소하고 순환과 회복을 통해 대자연과 함께 새로운 생명과 시작을 염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그의 말처럼 과거의 흔적들이 화염 속에 모두 사라졌지만, 하얀 눈밭에 피어오르는 소멸의 흰 연기와 함께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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