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경영학자로서 요즘 거대야당의 입법활동 및 의사결정을 보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명기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불현듯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대사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다 죽는단 말이야." 꽤나 임팩트 있었던 이 대사가 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상황에서 상기되었을까? 개정법안 실행이 초래할 수도 있는 파국이 그만큼 위험해 보인다는 말이다. 현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기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필자는 개정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다.
첫째,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기 자체가 불필요하다. 주식회사는 주주들의 집합체적 개념이므로 이사가 (주식)회사를 위해 충실의무를 다하는 것이 곧 총주주를 위해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주를 위하여'라는 부분을 따로 구분지어 법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없다.
둘째, 대체로 개선이 아닌 개악에 가깝다. 현재 진행 중인 상법 개정안을 보면 '교각살우', 즉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게 만드는 격이 될 수 있다. (소액)주주를 위하여 충실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들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소액)주주들의 소 제기에 불안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각종 시시비비를 가림에 있어 그야말로 동네북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기업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이사들로 하여금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오히려 퇴행적 기업 경영을 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 중 경쟁력을 갖춘 분야들의 경우 위험이 큰 연구개발(R&D)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주주들로부터의 견제 때문에 기업들이 실패를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 단기적인 시야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도전과 성장을 위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주주들의 눈치를 보며 진취적인 의사결정을 못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성장과 발전은 멈추고 소송과 분쟁만 난무하는 기업 환경이 될 것이다.
셋째,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근거한 법 개정이다.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라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따로 명기하자는 찬성론자들은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가장 큰 명분으로 삼는 듯 보인다. 사실 그 명분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소액주주를 불평등에 취약한 약자로만 프레이밍하려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프레이밍 안에서 사회에는 약자와 강자,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대변되는 양극단의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권리를 요구하려면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소액주주들이 과연 기업의 경영과 관련하여 얼마만큼의 고민과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소액주주들을 보호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실체는 무엇이며, 과연 어디까지를 해당 범위로 두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 개정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건전한 기업 경영을 도모하고 이사는 주주총회의 결정과 총회에서 위임한 사항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주주들도 행복해진다. 이러한 선순환을 부정하고, 예외의 케이스를 가지고 자유시장 경제하에서의 건전한 기업 경영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악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때다.
안희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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