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이 흐른 2011년 말 박씨의 과거 동거녀가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왔다. 박씨와 함께 2008년 5월 충남 아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박씨가 “내가 조씨를 굴착기로 생매장해 죽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여성은 여행 직후 박씨가 가져온 조씨의 휴대전화와 가방 등 소지품을 경기 용인시의 한 수녀원 다리 밑에서 함께 태웠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서 조씨의 실종 사실을 확인했고 검찰은 살인 혐의로 박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중장비 기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이들은 박씨가 중장비 운전사 소개 사업을 제안해 동업관계가 됐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이들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한 공사현장에서 조씨가 “1290만원의 투자금을 갚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하자 격분한 박씨는 조씨를 파 놓은 구덩이에 밀어 넣은 뒤 굴착기로 흙을 덮어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박씨는 “조씨가 굴착기 엔진오일을 갈다가 미끄러져 구덩이에 떨어져 죽게 돼 묻어 준 것”이라며 용인의 한 포도밭을 매장 장소로 지목했다. 경찰은 3일간 일대를 파 봤지만 헛수고였고 거짓 진술로 결론 내렸다.
이후 박씨는 “조씨가 이혼을 해 충격으로 외국에 나갔을 수도 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또 조씨와 연락이 두절된데다 조씨의 소지품이 너무 더러워 태웠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 앞에 동거녀와 경찰의 진술, 관련자들의 통화 및 출입금 명세 등 모든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특히 박씨가 2008년 5월 갑자기 집과 자동차를 처분하고 여권 및 수표를 발행받는 등 아들과 중국으로 출국하려 한 증거도 나왔다.
그러나 시체가 없는 이상 모두 정황증거였다. 2008년 또 다른 시신없는 살인사건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의 사망 사실이 증명돼야 함은 물론이고 그 사망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법원은 배심원 9명 전원의 ‘유죄’ 선택을 받아들여 박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매장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핵심 증언의 신빙성이 강력한데다 가까운 사이인 피해자가 사라졌는데도 피고인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일부 증인의 믿기 어려운 진술을 배제해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후 2013년 1월 박씨는 "조씨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같은해 7월 대법원도 박씨에게 징역 13년을 확정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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