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의용소방대·아내는 적십자 봉사원…"봉사자 중 이재민 많아"
"산불 피해 겪어보니 이재민들 뭐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아"
[르포] "내 집도 탔지만 이웃 외면 못해"…슬픔 잊고 봉사 나선 이재민남편은 의용소방대·아내는 적십자 봉사원…"봉사자 중 이재민 많아"
"산불 피해 겪어보니 이재민들 뭐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아"

(안동=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남편이 의용소방대원인데 이웃 마을에 산불을 끄러 갔다가 우리 집이 타는지도 몰랐어요."
28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이자 봉사자인 김미년씨는 생업을 제쳐놓고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산불 대피소에서 다른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봉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지난 25일 산불이 자기 집이 있는 구수 2리까지 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의용소방대원인 남편은 이웃 마을 불을 끄고 있었다.
김씨는 다급히 귀중품을 챙기러 자기 집으로 향하다 도로에 연기와 불꽃이 너무 심해 집까지 가지 못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다음 날 구수 2리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마을 전체가 불에 타 형체가 멀쩡한 집은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의 집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 것도 잠시 김씨는 구수 2리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길안중학교로 향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웃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다.
김씨는 "집이 다 타고 아직 산불의 위험이 남아 있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으냐"며 "어차피 안동체육관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가족처럼 지내던 마을 이웃들을 위해 봉사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온종일 대피소에 머물며 이웃 이재민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식사 준비부터 이재민들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뜰히 챙기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대피소는 자신도 산불 피해를 입어 도움이 절실하지만 오히려 봉사자로 나선 주민들이 많다. 자원봉사자 숫자가 부족해 이재민이 봉사자가 된 격이다.
마을 전체가 불에 타면서 새마을 부녀회, 적십자 봉사원 등 봉사단체에 소속된 주민들도 대부분 피해를 봤는데 이들은 평소처럼 자신들보다 이웃들을 먼저 챙겼다.
길안면 대곡2리 새마을부녀회 신정자씨도 집이 모두 불탔지만 대피소에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신씨는 "내가 산불 피해를 겪어보니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또 뭐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