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이 문화재니까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죠."
(청송=뉴스1) 김민수 이강 기자 = 국가 지정 민속문화유산인 경북 청송 사남고택의 주인 신응석 씨는 화재 당시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신 씨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신 씨는 "태풍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할 수 없이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집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2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의성발(發) '괴물 산불'이 1주일째 계속되면서 지역 문화재 피해가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이날 뉴스1이 방문한 청송 사남고택은 이미 전소된 상태였다.
18세기 후반에 건립된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가옥은 온데간데없고 까맣게 그을린 기왓장과 나무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고택 한편에는 신 씨가 불을 끄기 위해 급히 집어 든 소화전 호스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사남고택에서 불과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서벽고택은 전소되진 않았지만 곳곳에는 화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옥 벽면에는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고, 가옥 이곳저곳에는 이미 다 사용한 소화기 몇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사남고택에서 약 4㎞ 떨어진 송소고택도 겨우 화마를 피했다. 관리 운영자인 심재오(70·남) 씨는 "소화기 16개를 전부 다 써버렸다"며 당시 마치 "불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인근에 거주 중인 주민들도 문화재 피해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남고택 인근에서 만난 주민 신효성 씨(64·남)는 "문화유산이고, 사람들이 고택을 구경하러 오는 것을 봤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며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고택이 완전히 소실돼 버려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종대왕 때 건립된 청송 만세루 전소…"어릴 적 추억" 주민들 탄식
조선 세종의 명으로 건립된 청송 만세루 또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6일 경북 유형문화유산인 청송 만세루가 전소됐다고 확인했다. 당시 화재 영상(무구 스님 제공) 속에도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전소된 후 찾은 만세루는 원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왓장과 까맣게 탄 기둥에서는 연기가 여전히 피어나고 있었다.
보광사 누각인 만세루는 조선 세종이 부사 하담(河澹)에게 명해 건립된 청송 심씨 시조 심홍부의 묘재각(墓齋閣)이다.
청송 보광사 주지 무구 스님은 "600여년이 된 건물인 만세루는 청송 사람들에겐 어릴 때 소풍을 오는 등 추억이 서린 고향과 같은 곳"이라며 "전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찾아와 현장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중·대형 11개 산불로 인해 경북 24명, 경남 4명 등 총 28명이 사망했다. 경북 4명, 경남 5명 등 중상자는 9명이고 경북 22명, 경남 4명, 울산 2명 등 경상자는 28명이다.
불에 탄 산불영향 구역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4만 8150㏊로 집계됐다. 산림 피해 규모로 보면 역대 최대다. 또 축구장 크기(0.714㏊)로 환산할 경우 약 6만 7400개, 여의도 면적(290㏊)의 166배, 서울 면적(6만 523㏊)의 80%, 제주도(18만 5027㏊)의 26%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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