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처 모르면 인정 못한다는 논리
국회 몫은 남겨 두어 밥그릇 챙기기
국회 몫은 남겨 두어 밥그릇 챙기기
우 의장의 결정으로 여야는 일단 시간을 벌어 내년도 예산안을 다시 수정하는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예산안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협의에 임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어 진행이 더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단독 처리한 예산안은 677조원 규모에서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안이다. 여당은 예비비 2조4000억원,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감사원 등의 특정업무경비·특수활동비와 더불어 석유시추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중요한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된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야당은 그러면서 국회 특활비 9억8000만원과 특경비 185억원은 전액 통과시켰다. 이런 점은 여당도 알고 지적했겠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야당의 특활비·특경비 삭감 논리는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는 경비 사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 두 경비도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영수증을 제시할 필요가 없는 경비다. 자신들이 쓸 경비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정부 경비만 문제 삼은 것은 제 밥그릇 챙기기요, 이율배반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금액을 세부적으로 보면 대통령실 특활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경비 506억9100만원과 특활비 80억900만원, 감사원 특경비 45억원과 특활비 15억원 등이다. 국회 특활비는 의원 외교활동 1억8000만원, 기관운영 지원 8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경비는 의원들의 입법과 정책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의원들이 국회의 경비를 전액 유지한 데는 운영에 꼭 필요한 비용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기관들이 사용처를 공개할 수 없는 데는 국가기밀이나 수사 보안 등 합당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마약 수사에 드는 경비의 사용내역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덮어놓고 삭감한 것은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을 대놓고 괴롭히고 길들이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야당의 선심성 지역예산에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데 대한 맞불 또는 보복일 수 있다.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온 특활·특경비가 일종의 비자금으로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용처가 있다면 허용하는 게 맞는다.
앞으로 한 주 동안 야당은 여당과 적극적으로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런 모순을 인정하고 예산 삭감을 철회하기 바란다. 야당은 지지자를 등에 업고 역대 어떤 국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제멋대로'식 국회 운영을 하고 있다. 이런 망나니 같은 국회를 국민들은 언제까지 인내하면서 지켜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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